안보생활안보칼럼

[안보칼럼]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간극(gap) 및 극복 대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독단적 춤사위가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안보위기 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고, 지난 6월엔 러시아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체결했다. 10월부터는 러시아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며 혈맹관계가 됐다. 그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9형’) 발사를 지도하면서 “적을 다스릴 수 있고, 억제할 강력한 힘”이라면서 “핵 무력 강화 노선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 바꾸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강력한 핵 비확산정책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고자 노력하지만, 갈수록 이해관계는 더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국가전략에 따라 일부 국가의 핵 개발을 용인(묵인)하면서 비핵화 기준마저 모호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美 대선 간 공화·민주당 강령에선 그동안 꾸준히 제시되던 ‘북한 비핵화’ 문구가 사라졌다. 중국을 방문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10월 한·미 국방장관이 참여하는 제56차 전략안보협의 회의(SCM) 결과를 발표할 때 ‘북한 비핵화’ 문구는 보이지 않았고, 이어진 ‘2+2회의(외교·국방장관)’ 이후 공동발표에서도 美 측은 ‘한반도 비핵화’를, 韓 측은 ‘북한 비핵화’라고 각기 다른 용어를 사용하며 이러한 느낌은 더욱 확실해졌다.

다시 말해 美 행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하던 ‘북한 비핵화’라는 의미 사용에 미묘한 틈(gap)이 생겼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전략엔 상당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북한 비핵화’는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과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고민스럽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러시아와의 밀착 속에 핵무기와 첨단 군사기술을 고도화시키는 시점이다. 지난 6월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서 발간한 <2024 Year-book>도 북한이 최대 90개의 핵탄두를 보유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러-북 관계는 군사적 혈맹관계로 더 끈끈해졌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탄두 보유를 기정사실로 여기는 현실에서 우리 나름의 대응전략과 대책이 절실하다.

2021년 미국(조 바이든 행정부)-한국(문재인 정부) 간 처음으로 개최된 ‘2+2회의’ 발표문을 조율할 때도 유사한 사례는 있었다. 발표 문구를 협의할 때 인식이 좁혀지지 않자 토니 블링컨 장관은 ‘북한 비핵화’로, 정의용 당시 장관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고 서로 다르게 표현했다.

지난 10월 말 개최된 ‘2+2회의’는 러-북 간 군사적 관계의 밀착에 따른 대처 수준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크게 여섯 가지로서 첫째, 북한이 핵무기로 공격하면, ‘정권 종말로 귀결’될 것을 재강조했다. 둘째, 핵확산 금지조약(NPT) 의무를 재확인했다. 셋째, 美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정례적으로 전개하여 가시성(visibility)을 증진한다. 넷째, 러시아의 대북(對北) 군사지원을 주시하고, 곧바로 공개한다. 다섯째, 우주·사이버 공격은 상호방위조약 제3조의 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섯째, 국방 상호조달협정(RDP-A)을 내년(2025)에 체결하는 등 이었다. 

그러나 공동발표를 진행할 때 비핵화 용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인식의 차이가 드러났다. 문제는 내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더더욱 ‘북한 비핵화’ 용어에 집착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북한 김정은은 중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러시아와 혈맹관계를 맺음으로써 할아버지(김일성)가 중-러 관계를 이용해 양국의 지원을 받아내던 과거를 복제(複製)하려는 속내가 읽힌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다르게 시진핑의 감정적 불쾌감이 상당하기에 당분간 중-북 관계는 상당히 소원하게 되어있다.

김정은의 무한 질주가 동북아를 불안에 빠뜨리며, 미국과 한·일·필·타이완 간 안보 네트워크는 더 결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시진핑이 북한(완충지대)을 활용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흔들고, 미국과의 패권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던 구상은 크게 난감해졌다. 그러나 김정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對)러 관계를 심화하며 위험한 줄타기에 심취돼 있다. 우리의 입장에선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현실에서 시진핑에게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을 자제시킬 영향력(힘)이 있을지 고민스러운 정국(政局)이 이어지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는 “러시아가 어려운 시점에 북한군 파병까지 받았기에 북한의 핵 용인(容認-approval)을 넘어 공동 사용으로까지 갈 수 있다는 극단적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제사회에선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기에 강자존(强者存)의 법칙이 존재한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敵)도 없다. 미국의 국가전략 1순위는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이제 더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몰아칠 것이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일 중심의 정치·외교·군사정책(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격랑에 빠진 국제정세의 큰 흐름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정치·외교를 감정·정서적으로 판단하며 정형화된 정책을 고집하기보다 급변하는 국제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하여 국익에 부합하는 맞춤식 정책(전략)을 내놓을 때다. (konas)

김성진 : 향군 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정치학박사), 경제포커스 국방전문기자, 대한민국ROTC 통일정신문화원 통일정책연구실장/논설위원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