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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삼일절.. 태극기게양은 우리들의 의무

우리가 기억해야할 '삼일절' 이야기.. 이날엔 태극기를 게양합시다

거리 곳곳에 태극기가 자랑스럽게 펄럭이는 날. 바로 삼일절! 삼일절은 1,919년 3월 1일, 오로지 독립이라는 염원 하나로 목숨도 마다하지 않았던 선열들의 위업을 기리는 날입니다.  국경일로도 지정된 삼일절의 역사와 의의를 자세히 알아보고 올바른 국기 게양법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19년 3월 1일, 그 날의 역사 속으로

3.1운동의 역사적 배경

*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 발표 (1918.01.08.)
1910년 한국이 일제에 강제로 병탄된 뒤 한국의 의병·열사들은 일본의 부당한 침략에 항거하여 전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에 나선 가운데, 미국 대통령 윌슨(Wilson, T. W.)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발표되었습니다. 윌슨이 제안한 민족자결주의는 각 민족은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이 권리는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요. 한국의 민족지도자들은 이에 의거해 한국 민족의 독립을 호소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 고종황제 붕어(崩御) (1919.01.21.)
민족자결주의 발표 이래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의 분위기가 고조되어가던 때,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갑자기 붕어하였습니다. 덕수궁에서 기거하던 고종황제는 당시 68세로 건강한 편이었는데, 갑작스런 중병으로 붕어했다는 발표가 있자 국민들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 때 마침 일제가 독살했다는 말이 퍼져 온 국민들은 망국의 설움과 일제에 대한 적개심으로 크게 동요하게 되었습니다.

* 재일유학생의 2.8독립선언 (1919.02.08.)
일본 도쿄에서 거행된 2.8독립선언은 이러한 분위기에 불을 당겨 3.1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조선청년독립단은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하였고, 이에 장내는 독립만세 소리와 환호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3.1운동의 경과

* 민족대표 33인의 독립 선언서 낭독
3월 1일 정오경부터 민족대표 일동은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 시각인 오후 2시가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한편 태화관 주인을 통해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민족대표가 여기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나서 축배를 들고 있다고 통고하게 하였는데요. 이 통고를 받은 일본경찰대는 즉각 달려와 태화관을 포위하였습니다. 이 때 민족대표들은 독립을 선언하는 한용운의 간단한 식사를 들은 후, 그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한 뒤 의연하게 일본 경찰에게 연행되었습니다.

*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
이 무렵 탑골공원에서는 서울의 중등학교 이상의 남녀학생 4,000~5,000명이 몰려와 독립선언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본래 독립선언식은 탑골공원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학생들의 희생을 고려하여 민족대표는 태화관에서 모였던 것이었습니다. 오후 2시가 되어도 민족대표가 나타나지 않자,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한 청년이 자진하여 단상으로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습니다. 독립선언서의 낭독이 거의 끝날 무렵, 학생들은 모자를 하늘로 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이들이 선언을 끝내고 탑골공원을 나서자 수만의 군중이 호응하며 함께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고, 시위 대열이 대한문 앞에 이르렀을 때는 온 서울 시내가 흥분된 군중과 만세소리로 들끓었습니다. 시위행렬은 대한문 앞에 이르러 고종황제의 빈전을 향해 삼례를 올렸습니다. 시위 행진은 각 동으로 퍼져 나갔으며, 해질 무렵부터는 교외로 번져나갔으나 단 한 건의 폭력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본 군대와 기마 경찰의 무력저지로 인해 평화적 시위를 하던 군중들은 강제 해산되고 주모자 130여 명이 체포, 구금되었습니다.

* 3.1운동의 전국적인 확산
3월 1일에 독립만세운동을 벌인 곳은 비단 서울만은 아니였습니다.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선천, 원산 등 이북지방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는데요. 이렇게 3월 1일에 점화된 독립만세운동의 불길은 날이 갈수록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등 전국 각지로 번져갔으며, 3월 21일에는 제주도에까지 파급되어 한국 역사상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1919.04.01.)
특히 독립운동사의 대표적인 만세운동으로 꼽히고 있는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은 유관순 열사의 활약으로 잘 알려져 있죠. 1902년에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1916년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편입하게 되고, 조국독립을 위한 기도회와 시국토론회 강연회 등에 적극 참여하게 되는데요. 3.1만세운동에도 참여하여 붙잡혔으나 곧 석방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인 천안으로 돌아가, 4월 1일 병천시장에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검거되어 투옥 중에도 옥중만세운동을 벌였고, 오랫동안 계속된 고문과 영양실조로 1920년 9월 28일, 18세의 나이로 순국하였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나섰던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다시 한 번 기억하는 삼일절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합시다!

삼일절, 올바른 국기 게양을 위한 꿀팁

우리는 이렇게 자랑스럽고도 거룩한 삼일절을 기념하기 위해 3월 1일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국기를 게양합니다. 여러분! 올바른 국기 게양법을 알고 계신가요? 오늘 블로그지기가 올바른 국기 게양을 위한 꿀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국기 게양법을 알려드리기 전에 먼저 올바른 태극기의 형태를 말씀드릴게요. 태극기는 가운데에태극모양이 있고 네 모서리에는 4괘가 있습니다. 4괘는 시계방향으로 하늘을 뜻하는 건괘, 물의 감괘, 땅의 곤괘, 불의 이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건괘는 3개의 괘, 이괘는 4개의 괘, 감괘는 5개의 괘, 마지막으로 곤괘는 6개 괘로 되어있는데요. 이렇게 지그재그 방향으로 생각하시면 조금 더 이해가 쉽겠죠?

올바른 국기 게양법 첫 번째 꿀팁

삼일절은 조의를 표현하는 날이 아니기 때문에 깃봉과 깃면 사이를 떼지 않고 게양합니다.

올바른 국기 게양법 두 번째 꿀팁

국기는 온종일 달 수 있으나 야간에는 적절한 조명을 해야 합니다. 낮에 게양하는 경우 오전 7시에 게양하며 3월과 10월 사이엔 오후 6시에는 내리도록 합니다. 반면,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후 5시까지 게양합니다.

올바른 국기 게양법 세 번째 꿀팁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의 경우에는 집 밖에서 볼 때 대문 혹은 난간의 중앙이나 왼쪽에 게양합니다. 건물 주변에 게양할 경우에는 전면 지상의 중앙 또는 왼쪽, 옥상이나 차양시설 위의 중앙, 혹은 주된 출입구 위 벽면의 중앙에 게양합니다.

올바른 국기 게양법 네 번째 꿀팁

훼손된 국기를 계속 게양해선 안됩니다. 훼손된 국기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즉시 소각해서 폐기하여야 합니다.


만세운동이 한참 있었을 당시 일본은 태극기를 들고 있었던 손을 모두 잘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선열들께서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다른 손으로, 그 손마저 잘리면 입으로 태극기를 물었습니다. 그 불굴의 의지가 모이면서 더 큰 독립운동의 불씨가 되었고 조국의 광복을 앞당겼습니다. 오늘 블로그지기와 함께 알아보았던 삼일절의 역사와 올바른 국기 게양법으로 숭고한 선열들의 희생을 기리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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